solo exhibition
TURN, SWITCH, JUMP!
2022.01.06-01.27
갤러리조선
생명을 부여하는 움직임이란 흔적
글 / 이소라

움직이는 그림이 있다. 자신의 왼쪽에 위치한 덤퍼에게 코를 벌름거리며 수줍지만 적극적으로 상체를 기울여 입술을 맞추는 미스 버니와 수줍음에 귀가 팽그르 말려 올라가며 왼쪽 발은 부르르르 떨고 있는 덤퍼의 설레는 순간을 담은 <chu->(2021). 제자리에서 손(날개)으로 얼굴을 붙잡고 상체를 위아래로 흔들며 격정적 분노를 표출하는 <Ugh->(2021). 세고 세고 또 세어도 한계없이 반복되는 지폐를 척-척-척- 넘기는 <Racks racks>(2021). 굿모닝 한 번으로는 부족해 굿모닝 굿모닝 굿모닝 반복적으로 건네는 인사말 <Good Morning>(2021). 이 그림들은 GIF(움직이는 짤방, 이하 움짤)에서 태어났다. 움짤은 원본의 영상에서 잘린 한 토막이다. 움짤은 긴 호흡을 가진 영상들의 홍수 속, 원 저작자의 의도는 지워내고 (시작과 동시에 끝나거나, 어떤 구간인지 알아차릴 수 조차 없는) ‘찰나같은 영원’을 만든다. 특정 장면이 강조된 짧은 영상 속 대상들은 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한다. 이들은 덧없는 몸짓을 수행자처럼 수 만 번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몸은 땅을 딛고 중력에 맞서, 움직이도록 만들어졌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작품 속에서) 주변을 경계하기 위해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리는 <Watcher>(2021) 미세한 동작부터, 거대한 눈덩이를 안고 산 비탈길을 데굴데굴 <Rolling>(2021) 굴러 내려오며 질량과 속도를 포함하는 동작에 이르기까지– 움직인다. 언어에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사(動詞)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 또는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이다. 또한 문장의 주체가 되는 말을 서술하면서 주체를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여기서 ‘움직일 동(動)’은 ‘움직이다, 옮기다, 흔들리다, 시작하다’는 물리적인 상태 표현하면서 ‘동요하다, 느끼다, 감응하다’ 처럼 존재의 심리적인 상황 또한 내포한다. 전시 제목인 《TURN. SWITCH. JUMP!》는 작가 이은의 작업 전반에 드리우는 물질의 율동감을 언어의 음률로 전환(switch)한 것이다. 작품 명들은 전시 제목처럼 감탄사를 통해 생득적인 감각을 놀람, 느낌, 부름, 응답 등으로 담고 있다. 이는 캔버스 대상의 느낌이나 의지이기도 하지만 데이터 세계를 부유하고 있는 움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그 중 오늘 자신의 상태를 대변하거나 마음을 이끄는 움짤을 택해 작업을 시작하는 이은의 작업 방식과 닮아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를 다른 단어에 기대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감탄사’처럼 작가는 자신의 근래에 작업 방식을 바꾸고(turn) 이전의 작업들은 캔버스 뒷면에 숨기고(switch) 다시 도약(jump)하겠다는 의향을 숨기지 않는다.
이은이 회화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것들이다. 곁에 자주 두고 볼 수 있어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들. 따라서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이끌리는 본능적인 상황, 억눌러야 하는 충동 등 현실세계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것들을 움짤 속 대상의 행동이나 문구들로 끌어낸다. 캔버스 속 대상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왜 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지는 뒤편으로 물러나 있다. 눈 여겨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계속해서 대상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움직이는 영상’을 보면서 회화 속에서 살아있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몸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물감이 캔버스와 닿는 순간, 만질 수 없던 존재들은 마침내 현실 세계로 밀려온다. 모니터 속에서 튀어나온 대상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눈에 보이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들의 몸짓은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캔버스를 긁어내 만들어낸 거친 자국들, 작가의 몸짓을 직접적으로 남기는 콩테를 사용하면서 물질성을 획득한다. 또한 캔버스를 하나의 화면으로 사용하면서 이미지를 겹겹이 쌓거나, 대상이 캔버스의 좌우를 경유하는 방식들로 시간성을 출현시킨다. 재료의 사용과 캔버스 화면을 재설정하는 무드들은 회화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재창조한다. 이로써 짧은 동작을 반복하며 한평생을 살아가는 대상들에게 움직이거나 머물 자리를 효과적으로 만들어준다.
움짤은 오늘날 우리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무선인터넷의 전국적인 보급은 백과사전도서에서 카테고리 내 유사한 정보를 연속적인 고리로 제공하는 방식을 뚫고, 네모 박스에 단어를 기입하고 클릭하여 개별 정보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이후 정보 검색이나 소통 방식은 ‘블로그’라 불리는 변화로 이어졌다. 사진과 텍스트가 결합된 방식은 위에서 아래로 PC 모니터 스크롤을 이동한다. 근래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대변되는 SNS 소비 폭증은 움짤의 일상화에 추진력을 달아주었다. 일상 속 빠른 정보 검색이나 덧없는 시간을 채워줄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사냥하고자하는 이들에게 좋은 놀이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의 감정을 읽고 헤아리기 어려운 역병의 시대는 서로가 놓인 감정이나 상황을 SNS에서 공유하고, 적재적소로 응하기 위해 하이라이트 영상인 움짤을 끌어온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이 같은 태도는 PC 모니터나 휴대폰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스크롤 하는 ‘세로 읽기’에서, 영상 플레이 바를 좌에서 우로 움직이는 ‘가로 보기’라는 전환의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데이터 세계는 수 초마다 업로드 되는 영상들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과 무관하게 그 토대를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그 속에서 움짤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명명하지 않은 장면이나 에피소드들을 무한히 반복한다. 작가의 눈길을 잡은 캔버스 속 대상들은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 저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들을 해내고 있을 뿐이다. 또한 행위의 주체로서 스스로 움직이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 상황 자체를 보여주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아주 짧은 형식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들의 영원한 움직임, 반복되는 동작들을 결코 어느 시점에 도달하지 않는다. 애초에 어느 곳으로 향하겠다는 의지 혹은 목표지향적인 태도를 전면에 드리우지 않는다. 그저 캔버스 안을 무한히 항해한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도착지는 어디인지 관객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묵묵히 그리고 담대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