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exhibition
바라던 대로 Bibbidi Bobbidi Boo
2023.08.18.-09.10.
성곡미술관 2관 1층
성곡미술관은 2021년부터 청년 예술가와 기획자를 발굴하고지원하기 위해 〈성곡미술관 오픈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해는이은, 이진영, 박재훈 3명의 작가를 선정하였고, 그 첫 번째로 이은의개인전 《바라던 대로 Bibbidi Bobbidi Boo》를 개최한다.
이은(b.1995)은 문자 기반의 소통 방식에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native) 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숏폼(short form) 콘텐츠에관심을 갖고, GIF로 제작된 움직이는 짤(움짤)을 회화 매체로 변환해그려내는 작가다. 주로 2000년대 방영된 핸드드로잉 기반의 2D애니메이션에 주목하는데, 이는 세기말에 태어난 작가가 어린 시절보고 자랐던 익숙한 대중문화에의 향수에서 시작한다. 이은이 소재로삼는 움짤은 원본 서사에서 벗어나 짧고 극적인 순간을 재구성하며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형성하는데, 이렇게 탄생한 움짤을 편집, 강조,생략과 같은 영화적 문법으로 해석하는 이은의 작업은 동시대시각문화의 파편화된 흐름을 닮았다.
이은은 전통적인 회화의 표현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톰과제리, 신데렐라, 도널드 덕의 이미지는 추상표현주의적 요소와뒤섞이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을 만들어 낸다. 이는 정지된대상을 그리는 작가들과 달리 움짤을 재생 상태에 두고 작업하는이은의 독특한 작업방식과 관련이 있다. 시간성을 가지는 영상에서영속성을 내재한 회화로의 전환은 관람객에게서 다시 원본을 연상케하는 움직임으로 변환되며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습식 물감과건재료, 스프레이와 오일바 등 다양한 도구의 사용 또한 작업이번역되는 과정에서 평면성을 넘는 층위를 만들어 낸다. 뭉개지고튀긴 물감 자국, 중첩된 레이어, 뻗어나가는 동세의 궤적은 흐르는영상의 순간이 낙서와 같은 형상으로 포착되어 캔버스에 머무르는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이은은 캔버스 화면을 전시장 벽면으로 확장한 대형월드로잉을 선보인다. 이전 개인전에서 전시장 공간을 움짤 사이트팝업창처럼 구성한 시도에 이어, 최소한의 공간을 구획하던 캔버스틀을 없애버리고 그 표현적 행위를 전시장 대형 벽면으로 확장하는것이다. 기존에 5초 이내의 짧은 움짤을 소재로 했다면, 이전시에서는 높이 6m 가로 20m의 성곡미술관 전시장을 위해2-3분가량 호흡이 긴 영상을 바탕으로 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것은개별 사이트에 접속해 콘텐츠를 소비하던 미디어 환경이 유튜브나넷플릭스와 같은 거대한 플랫폼으로 흡수되며 콘텐츠 제작 방식이변화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기 도중에 생겨난 자국, 행위의흔적을 기록한 이 월드로잉은 일종의 디지털 사생으로, 변화하는자연의 색채를 화폭에 담았던 고전 화가들의 작업 방식을 현대적으로변용한다.
작가가 ‘친구 만들기’라고 명명하는 작업의 과정은 원작의 세계에적극 개입하며 써내려가는 새로운 이야기로, 장난꾸러기 캐릭터들은기억 속 꺼내 올린 우리의 어린 시절 친구들과 같다. 움짤은 꽉 짜인시스템 속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현대인의 삶을 유희하고, 움짤에서해방된 이은의 캐릭터들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꿈꾸는 인간개개인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다. 전시 제목의 ‘Bibbidi Bobbidi Boo’는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가 외우는 마법 주문에서따온 단어로, 마법 같은 일을 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이은의 바람을 담았다.
글: 성곡미술관 제공
💗영원한 낙하: 이은 론
이은의 회화는 움직인다. 프레임 속의 캐릭터는 팔이나 다리를 휘두르고 있고, 얼굴에는 잔상이 남아있어 어떤 상황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처럼 보인다. 운동은 되돌아보아도 지치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관객은 이 속도감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묘한 현기증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속도와 운동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미래파 작가 자코모 발라의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1912)을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이은의 속도감은 단지 일직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구역 안에서 끊임없이 회귀하며 회전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그녀의 작품에 주로 소용돌이 같은 운동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의하자. 이 같은 특징은 그녀가 인터넷 밈의 방법론을 회화적으로 승화하려 노력한 결과다.
오늘날 새로운 세대는 핸드폰 안에 특정한 대화 상황에 쓰일 때를 대비해 밈 이미지 몇 장 정도는 저장하고 있거나 평소에도 밈을 새롭게 수집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톡 등지에서 누군가 보내는 짧은 동영상 혹은 이미지를 저장해 보았다면 당신도 밈 사용자이다. 고독한 카톡방 놀이처럼 전혀 문자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서로의 감정과 상황, 상태를 교환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GIF 혹은 짤방으로도 지칭되는 인터넷 밈 이미지는 유력하면서도 보편적인 디지털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밈의 일반적인 특징은 원본의 영상에서 특정 부분을 무단으로 절취해 새로운 맥락에 집어넣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원본의 어떤 부분에서 쓸만한 이미지를 발견, 잘라내기, 반복함으로써 해당 이미지를 원본으로부터 편집해, 완전히 새로운 맥락에서 재조합할 자원으로 소환한다.
이은의 회화에서 캐릭터가 느끼는 극단적인 감정과 짧은 움직임, 그것의 무한반복은 마냥 귀엽거나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그리는 디즈니 풍의 캐릭터들은 동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며, 원래 그것이 배치된 맥락으로부터 부단히 탈출함으로써 저항한다. 그녀는 대중문화의 일면들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가속해 탈구시킨다. 그렇게 그녀의 회화는 레고블록처럼 어떤 방향으로 조합을 해도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단위가 된다. 관객들은 그녀가 포획해 그린 동적인 이미지의 힘을 그 자체로 즐겨도 좋고, 동시에 그 힘들을 제멋대로 조합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원래 인터넷 밈은 그렇게 불법적으로 자유롭게 분해하고 합치는 놀이다. 특히 <Storming>(2023)은 일반적으로 크기가 작고 저렴한 품질인 인터넷 밈의 특징에서 벗어나 큰 캔버스에서 동적인 이미지 간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전시장 벽에 그려진 밈 벽화는 전시공간마저도 이 밈들의 연합을 위한 커다란 캔버스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은은 인터넷 밈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발명하고 있다.
2024년이 되는 내년이면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의 독점 저작권은 만료된다. 수 만 건의 밈이 매일 쏟아지는 중에 유독 미키마우스가 없었던 이유는 현실의 강력한 법 때문이다. 미키마우스의 다양한 에디션 때문에 만료 기한이 다시 연장될 가능성도 높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이은의 작품에 미키마우스가 추가될 날을 기다려 본다. 어쩌면 관객인 우리는 그것이 너무 빠르게 묘사되어 있어 미키마우스인지도 모를지 모른다. 속도와 운동은 교활함과 영리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재의 그녀의 작품이 그렇듯이.
이은의 작품에 등장하는 운동 중 낙하는 아래로 떨어지는 듯하지만 이내 다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끝이 없는 낙하다. 이 반복 속에서 캐릭터는 안전한 상태가 되고, 원본의 맥락으로부터 떨려 나가 자유를 만끽한다. 인터넷 밈의 절취 반복은 바닥을 향한 추락보다는 영원한 낙하의 감각을 선물한다. 그녀의 작품이 자유롭지만 편안한 이유다.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에란겔: 다크투어>(2021)와 <AI공포라디오쇼>(2022), <ChatGPT WAR 1부>(2023)를 연출했다.